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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익숙한 울타리를 벗어나 거친 세상으로
마흔이 되던 해, 나는 10년 넘게 몸담았던 직장에 사직서를 던졌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이라는 안락한 울타리를 제 발로 걸어 나오는 순간이었다. 주변에서는 "그 나이에, 그 안정적인 직장을 두고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며 말렸다. 하지만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까지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인가?'
그렇게 시작한 자영업의 길은 생각보다 훨씬 혹독했다. 인테리어 공사부터 재고 관리, 하루하루의 매출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일상은 직장인 시절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불안의 연속이었다. 밤마다 가게 문을 닫고 컴컴한 매장에 홀로 앉아있으면 '내가 과연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일까' 하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그러던 중, 서가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다시 집어 들었다. 학창 시절 과제 때문에 억지로 읽었던 그 책이, 마흔이라는 인생의 반환점을 돈 지금에야 비로소 내 온몸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유명한 이 한 구절을 읽는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느꼈던 그 극심한 불안과 외로움은, 다름 아닌 나의 '알'을 깨뜨리는 과정에서 오는 성장통이었던 것이다.

2. 두 개의 세계, 그리고 내 안의 싱클레어
책 속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어린 시절 '밝은 세계(부모님의 보호와 질서)'와 '어두운 세계(금기와 유혹)'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나에게 부모님의 품과 같은 '밝고 안전한 세계'였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상사의 지시대로 움직이면 최소한의 생계와 신분이 보장되는 세계.
하지만 그 안정감 뒤에는 언제나 내 삶의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있다는 답답함이 존재했다.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 안전한 세계를 깨뜨리고 야생의 '어두운 세계'로 걸어 나온 셈이다.
가게를 오픈하고 처음 몇 달간은 매일이 싱클레어가 느꼈던 죄책감과 공포의 연속이었다. '괜히 나섰다가 가족들을 고생시키는 것은 아닐까', '내가 과연 시장이라는 냉혹한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매일 아침 매장 셔터를 올릴 때마다 느끼는 중압감은 직장 시절의 스트레스와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나 데미안이라는 인물이 싱클레어의 삶에 나타나 그를 새로운 각성으로 이끌었듯, 자영업을 하며 만난 수많은 고비와 손님들, 그리고 벼랑 끝에서 느낀 책임감은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직장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내 삶의 진짜 주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3. 압락사스, 선과 악이共存하는 현실의 무게
헤세는 책을 통해 '압락사스(Abraxas)'라는 신을 소개한다. 압락사스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 빛과 어둠을 모두 포괄하는 존재다.
마흔이 되어 자영업을 하며 깨달은 진짜 세상도 이 압락사스와 참 닮아있다. 세상은 결코 친절한 '선'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으며, 그렇다고 절망적인 '악'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대박을 꿈꾸며 들어온 시장에서 만난 진상 손님이나 냉정한 매출표는 나를 절망케 했지만, 고단한 하루 끝에 찾아와 "사장님, 음식이 정말 맛있네요", "오랫동안 장사해 주세요"라며 건네는 손님의 말 한마디는 비할 데 없는 구원과 기쁨으로 다가왔다.
희열과 절망, 보람과 고독이 엉켜있는 이 자영업의 현장이 바로 나의 압락사스였던 것이다. 이제 나는 좋은 일에 과도하게 흥분하지 않고, 나쁜 일에 쉽게 좌절하지 않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인생의 매운맛과 단맛을 모두 삼키며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4. 마흔, 나에게로 이르는 길을 찾아서
《데미안》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20대에는 이 문장이 그저 멋들어진 문학적 표현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마흔이라는 나이, 그리고 내 사업을 이끌어가며 매일 사투를 벌이는 지금은 이 말이 가슴을 찌른다. 남들이 정해놓은 출세의 기준, 남들의 시선에 맞춘 안정된 삶은 결국 '남의 길'이었을 뿐이다.
퇴사 후 자영업이라는 선택은 비록 매일이 불확실하고 고단하지만, 적어도 내 의지대로 걷는 '나만의 길'이다. 내가 내린 결정에 책임을 지고, 내가 흘린 땀방울만큼 결과를 얻어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과 솔직하게 대면하고 있다.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안락함이라는 틀 안에 갇혀 스스로를 지우며 살아가고 있는 이가 있다면, 혹은 마흔이라는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앞에 두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가 있다면 《데미안》을 다시 한번 펼쳐보라고 권하고 싶다.
알을 깨고 나오는 아픔 없이는 결코 새로운 하늘을 날 수 없다. 비록 그 과정이 외롭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투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이다. 오늘도 나는 내 작은 가게의 불을 밝히며, 나라는 존재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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